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빼앗긴 세대 (문단 편집) == 빼앗긴 세대들, 그 이후 == 이런 역사는 무시되어 오다가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문제 제기와 진상규명 촉구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호주 국립대학의 역사학자 피터 리드 교수는 빼앗긴 세대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든 인물로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하면서 대중적인 관심을 환기시켰다. 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원주민들과 원주민들을 지지하는 백인들, 문화 예술인들이 빼앗긴 세대들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일으켰다. 1995년에 원주민 법률지원운동의 활동가인 롭 릴리는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책을 통해 수천 명의 원주민 혼혈인들을 취재하여 확보한 증언들을 대대적으로 공개해 빼앗긴 세대들이 겪은 가족과의 강제분리, [[아동 학대]], 성학대 등을 알렸다. 결국 1995년 호주 정부는 "호주 인권평등 위원회"를 통해 대대적인 진상조사를 실시했다. 이들은 500명 이상의 피해 원주민 혼혈인들의 증언을 청취하고 600개 이상의 관련 증거를 수집해 1997년 공식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근거로 [[노던 준주]], [[빅토리아주|빅토리아]], [[뉴사우스웨일스]],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등의 각 주 정부와 의회에서는 원주민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호주 연방정부 차원의 사과는 이뤄지지 않아 논란이 있는데 존 하워드 총리는 "지금 호주인들은 과거의 일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발언을 해서 지탄을 받기도 했다. 결국 1998년에 100만 명 이상이 모인 "제1회 국가사죄의 날"이 열려 호주 정부 차원의 사과를 촉구했다. 대중의 압박에 존 하워드 정부도 항복해 "혼혈 아이들을 강제로 부모에게 빼앗은 것은 국가적 흠이었다. 진솔하게 사죄한다."는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는 연방정부 차원의 사죄가 아님을 강조해 물의를 일으켰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원주민 출신으로 성화봉송자이자 400m 육상 스플리터 금메달리스트인 캐시 프리먼이 "내 할머니는 부모에게서 강제로 떨어졌던 빼앗긴 세대의 피해자였다"고 밝혀 이 문제가 다시 주목을 받았다. 2007년 케빈 러드 정부는 그동안의 호주 원주민 및 토레스 해협 원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학대를 사과하면서 빼앗긴 세대에 대해서도 사과하였다. 이는 연방정부 차원의 사죄였지만 이것을 시행하기까지는 진통이 만만찮았는데 보수 성향의 호주 정치인들과 국민들은 굳이 과거사를 꺼내서 죄의식을 강조할 필요가 있냐고 반했다. 그러나 케빈 러드는 결국 연방정부 차원의 사죄를 관철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가적 차원의 배상 등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